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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형 그리고 리어카

형 그리고 리어카



                            형 그리고 리어카 


                                                                                박 용 수


 


 


 황소개구리 박사, 고려중학교 박용오 선생님이 우리 형이다. 그런 형의 몸엔 상처가 둘 있다. 이마에 작은 흉터가 하나고 어깨 탈골로 인한 상처가 두 번째이다. 모두 나로 인한 것이다.
마을 앞산자락, 계단식 다랑치는 우리 천수답이다. 마당만하기도 하고 둠벙만하기도 한 논들이 가파른 산자락에 사다리를 세워놓은 듯 계단처럼 무려 12 다랑치이다. 우리 가족은 유일한 우리 소유인 놋동굴 천수답 가파른 산길을 봄부터 겨울까지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봄이면 위로부터 모를 심어 내려와야 했고, 땡볕 속에서 여름이면 아래 다랑치에서부터 맨 꼭대기 열두 다랑치까지 차례차례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야했다. 가을이면 무거운 볏단을 지고 헉헉거리며 사박사박 내려왔고, 겨울이면 캑캑거리며 두엄을 지고 올라야했다.
 그해 추수 때였다. 그날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볏단을 지게로 짊어지고 내려오셨다. 그러면 형과 나는 그것을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옮겼다. 일단 나락을 부려놓고 다시 산자락으로 어른들이 올라가고 나면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운반도중 리어카에서 나락이 쓰러지지 않도록 볏단을 잘 옮겨 쌓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거친 신작로에서 리어카가 덜컹거리면서 볏단이 빠지거나 쓰러져 낟알을 쏟아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볏단 쌓는 일은 형의 몫이다. 형이 틈새 없이 쌓도록 나는 리어카를 고정하고 형을 돕는다. 마지막 단단하게 묶는 다음, 형은 끌고 나는 뒤에서 민다. 중학생이 끌고 초등학생이 미는 것이다.
 놋동굴 탈곡은 매해 일요일에 했다. 형과 나의 노동력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고충을 아는 형과 나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했다. 문제는 늘 가파른 오르막이고 언덕이 끝나는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그날도 리어카 가득 낟가리를 실고서 털이 겅둥겅둥한 형은 끌고 솜이 보송보송한 나는 밀며 집으로 옮겼다. 따가운 가을햇살을 벌컥벌컥 냉수로 식히며 부지런히 오갔다. 그렇게 기십 번, 끄는 형이나 미는 나는 지쳐갔고 그럼에도 좀체 열두 다랑치의 볏단은 줄어들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려앉을수록 우린 바빠졌고, 리어카에 실려진 볏단은 우리도 모르게 자꾸자꾸 높아갔다. 그렇게 힘이 부칠 해질 무렵, 가파른 깔크막을 오를 즈음이었다. 고무신 사이로 들어온 자갈 때문이었을까. 소변이 마려워서일까. 고개를 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님 밀지 않아도 형이 갈 수 있다고 했을까. 그만 그 오르막 정점에서 끙끙거리며 밀어야할 나는 그만 순간적으로 주춤, 해찰을 하고 만 것이다.
 “어? 어?”
 몇 번, 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 커다란 볏단을 실은 리어카가 슬슬 후진을 하더니 가속을 내는 것이다. 서둘러 내가 손을 가져다 댔을 때는 이미 엄청난 무게로 후진하는 볏단을 당해낼 여지가 없었을 때였다.
 “우당탕탕 ”
 순간적이었다. 내가 몸을 획 돌려 피하자마자 가속도가 붙은 리어카는 번개같이 논고랑에 처박히고 만 것이다. 죽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흙먼지뿐이요 응당 있어야할 형이 보이지 않았다.
 부랴부랴 바지춤을 쥐어 매고 리어카 처박힌 곳으로 달려갔다.  볏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시궁창엔 응당 있어야할 형은 없고 리어카만 박살나 있었다. 
 ‘워메 워찌끄나!’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고동쳤다. 어린 나이에도 큰일이 났음을 직감한 나는  온힘을 다해 볏단을 헤쳐 나갔다. 하나하나 몇 단을 헤치자 형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형은 부서진 볏단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나는 그만 형을 껴안고 으앙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를 울었을까. 누군가 내 등을 토닥였다. 소식을 듣고 놀라 단걸음에 달려온 어머니였다. 나는 이마를 가리고 아버지 등에 업혀가는 형의 모습을 보고서야 내 실수를 거듭 자책했다.
 그해부터 형은 이마에 흉터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우리에게 변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매해 반복되는 놋동굴 천수답을 오르내리는 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매해 우리들의 밥그릇은 더욱 커졌고 그럴수록 아버지의 두레질과 지게질은 더욱 고단해졌을 것이다.
 불과 1년만이었다. 형은 끌고 나는 밀며 예전대로 그 길을 또 오가게 되었다. 그때도 추수 때였다. 내가 그때 힘껏 밀었더라면, 아니 요령만 피우지 않았더라도 형의 상처는 없었을 것이다. 리어카에 브레이크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낟가리에 가려 형이 뒤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깔크막에 가속도가 붙어 밀려가면서도 리어카를 놓지 않은 형의 정신이야말로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온 힘을 다해 밀었다. 형에 대한 부채의식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더욱 악을 쓰고 밀었다. 내가 게으름을 피울수록 형이 힘들어지고 내가 힘껏 밀수록 형은 수월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막 가파른 깔크막을 올랐을 때였다. 신작로는 깔크막을 정점으로 곧바로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나는 형에 대한 미안함을 지우려고 마지막 온힘을 다해 리어카를 밀었다.
 “으라차차”
 험난한 언덕을 다 올라오면 형이나 나나 숨을 할딱거리며 숨고르기를 한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정점이 분명 하지 않지만 수차의 경험으로 형과 나는 호흡이 척척 맞았었다. 그 지점이었다. 형도 이제 자연스럽게 균형만 유지하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숨을 고르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만 내가 힘껏 밀고 만 것이다.
 “어? 어?”
 이번에도 앞쪽에서 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싶어 내려가는 리어카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허사였다. 가속도가 붙은 리어카는 쏜살같이 내려갔고, 형은 중심을 잡지 못해 리어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반대편 언덕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오시고 놀란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어깨를 부목으로 고정한 형을 업고 아버지는 지난번처럼 서둘러 읍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부지깽이도 바쁘다는 추수철, 나는 그때 병문안조차 가지 못했다. 그런 형이 퇴원한다는 소식에 반갑기도 했지만 내심 두려웠다. 두 번이나 입원을 시킨 장본인이라는 가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린 형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한창 바쁠 때, 나만 쉬다니 형이 미안하다.”
 그리고 형은 밝게 웃으며 엄살까지 피워댔다.
 “다음부터는 살살 밀어라잉.”
 나는 부목을 한 형의 팔을 바라보며 거듭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미는 강도를 제일 먼저 감지했을 사람이 형이다. 미는 내가 앞에서 끄는 형의 강도를 느낄진대, 앞에서 끄는 형이 내가 미는 힘의 강약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내가 힘껏 민 것도 모두 형을 위함이었음을 형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는 그 어떤 것도 형과 나를 방해하지 못했다. 비록 그 낟가리에 가려 서로 볼 수 없음에도 노숙한 어린 숙련공의 호흡은 밀고 끌고 척척 맞아떨어졌다. 미는 힘과 끄는 힘이 균형을 이룬 가운데 가을걷이를 누구보다도 쉽게 끝내곤 했다.
 형과 아우, 리어카 수레바퀴 두 축과 같은 관계. 따로 놀지 않고 서로 호흡을 척척 맞춰 가는 바퀴 말이다.
 지금 시골집에는 운행을 멈춘 리어카가 마당 한 귀퉁이에서 녹슬어가고 있다. 타이어에 팽팽했던 바람도 현재 형과 나와의 관계처럼 시들해있다. 나는 그런 타이어를 보면 빵빵하게 바람을 넣고싶어진다. 리어카에 대한 단상, 그렇게 형에 대한 따뜻한 사랑으로 덩그마니 남아있다.


 * 손수레는 주로 도시에서 사용하는 양철로 된 작은 수레이고, 리어카는 시골용 짐수레, 인력거다 

                                            <수필과 비평 87호>


 

                             
감알 마제스 삶의 향기 근검절약 견지와 여행 독백들의 공간. 깜장마녀 하우스 나무 친구들 adsl 도나코
2009/03/26 13:28 2009/03/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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