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판, 마음 두근거리던 미술시간의 내음

저런 화판을 들고 다녔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화판이란 말은 크레용이란 이름처럼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러나 미술시간은 실은 공포였다.
손재주가 무지 없던 나로서는 미술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미술시간이면 울고 있었다.그저 눈물이 뚝뚝 흘렀다.
도대채가 그림을 그린다는게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생긴 증상이니 아직까지 여기서
벗어나기는 틀린 일이다.
선생님께서 왜 우냐고 하면
똑같이 그려지지 않아서라고 답했으니
난 도대체 상상력이란 전무했던 것인지.
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는 아주 놀라울 정도였다.
적성검사 결과를 들고 오신 선생님 말씀이
"30년간 교사 생활을 했지만 적성검사에 미술이 거의 0점이 나오는
애는 처음 봤다. 그리고 국어가 거의 100으로 나오는 애도 처음 봤다"
이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더욱 미술과는 먼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화판이나 도화지, 크레용은 무척 좋아했다.
그냥 그걸 가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크레용의 그 냄새, 정물 중에서도 가지와 포도를 그리는걸 좋아했다.
보라빛 크레용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미술시간은 참 두려움이었는데
그에 비해서 성적은 과히 나쁘지 않았으니 나로서도
도무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선생님이
내 그림에 관심을 가진적도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그림그리는걸 싫어한다.
그냥 싫어하는게 아니라 정말 두렵다.
그러나 보는 것은 어떤 사람보다도 좋아한다.
그리고 미술도구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애들에게는 쓸모도 없는 온갖 미술도구라면 아무거나 다 사주었다.
그림 못그리는 한을 푸느라고 그랬는지
학교 다닐 때는 인사동과 경복궁 근처의 미술 전시관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출근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 고요한 전시실도 마음에 들었지만
색채들의 수런거림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미술 못그린 내 한은 우리 아이들이 다 풀어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일본 동경에서도 대상을 휩쓸어오고
미술학원을 구태여 가지 않아도 손가락 재주만으로도
미술을 다 잘하니 참 어쩐 일인지 모른다.
미술이란 유전은 아닌 모양이다.
공포의 미술시간이었지만 미술시간에 창밖을 보면 온갖 색들이
마구 뒤섞여 나열되어 있던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시간에만 특별히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먼 뒷날 나는 어느 봄날,
대학 캠퍼스에서 만개한 개나리곁을 지나다가
뜻밖에도 노란 크레용 냄새를 맡았다.
그 노란 크레용 냄새, 개나리꽃의 냄새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리고 화판에 펼쳐놓던 흰 도화지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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